식물의 시간
구해인의 그림에세이(미술작가·시인)
(식물의 시간ⓒ 구해인)
나의 창가는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겨울에도 새잎이 돋고 작은 꽃봉오리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지난 겨울이 내게 춥지 않았던 이유는 식물들이 보여준 작은 기적들이 있어서다. 흐린 날도 화사해지는 창가에 봄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식물들을 살피는 일로 시작한다. 이 일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식물이라고는 2년 전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왔던 마리모 하나와 언젠가 전시회 때 받은 안스리움 화분과 작은 스투키 화분이 전부였던 우리 집에 작년 11월 중순 즈음 새로운 식물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창 인체에 해로운 5G 전자파를 집에서 차단하고, 실내 voc(휘발성유기화합물) 수치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자파 차단과 공기 정화 효과가 있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사실 쉬운 일도 아니지만…. 오래전에 식물들을 다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서 우려도 되고 게다가 돌볼 무언가가 생긴다는 건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자파와 voc가 더 큰 문제였으므로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산세베리아, 테이블야자, 금전수, 다육이, 선인장 등을 시작으로 지금은 식물의 종류가 더 늘었다. 푸실이, 강생이, 분더, 쭝쭝이…. 우리 집에 왔으니 새 이름도 붙여준다.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나에게 특별한 식물들이 된다.
식물 키우기를 검색하니 '초보 식집사'라는 말이 눈에 띈다. 자신이 키우는 대상에 '집사'라는 단어를 붙여 유행처럼 사용되는 이 합성어만큼 우스꽝스러운 말도 없다. '집사'의 사전적 의미는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집사가 되는 순간 주종 관계가 뒤바뀌어 식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사랑과 애정으로 키우는 대상에게 하인 노릇이나 하는 존재로 자신을 비하하고 스스로 폄하될 필요는 없다. 많은 정보를 안다고 해서 식물을 잘 키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몇몇 식물은 결국 떠나보냈다.
호기심에 샀던 식충식물 긴잎끈끈이주걱은 매일 아침 놀라움과 기쁨을 줬다. 하나의 긴 꽃대에 꽃봉오리가 조롱조롱 약 20개 남짓 달려있는데 정확하게 하루에 하나의 꽃을 피웠다. 하나가 피고, 그 하나가 지면 다음 꽃이 피고 차례차례 마지막 꽃까지 핀다. 서두르거나 미루는 법이 없다. 단지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뿐. 한편 떨어진 선인장의 자구들을 흙에 꽂아 놓았더니 뿌리가 났다. "와, 세상에! 대단해", "정말 멋져" 나는 가까이 다가가 녀석들의 작은 변화에 감탄한다. 식물에게 말을 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녀석들은 신기하게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의 시간과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사는 식물들을 통해 다시 나를 본다. 본질에서 비켜난 내 시간을 되찾는다. 진짜 세상을 밀치고 되레 진짜 행세를 하는 가상의 디지털 세상이 그럴듯해 보일 때가 있었다. 초연결의 뒷면은 초끊김이듯 전원만 끄면 사라지는 조악한 허상의 세계와 결별한다. 매 순간 살아있는 이 존재들은 세상과 나 사이를 단단하게 이어준다.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벅차오른다.
색이 다른 세 개의 튤립이 저마다의 속도로 하얀 구근에서 싹을 밀어 올리고 꽃잎을 가다듬는 중이다. 한 세계가 열리고 봄빛 가득한 시가 될 것이다. 창가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창틀은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다. 나는 고요한 식물의 시간을 사랑한다. 사랑! 그래, 항상 귀결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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