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부산 교육특구

지역 대학가에서 우려하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올해 대입 정시모집에서 부산 모 대학 학과 2곳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산에서는 처음이지만, 시기가 빨라졌을 뿐 예견된 일이었다. 비인기 학과라는 특성도 있겠고 근본적인 이유는 인구절벽이라고 봐야 한다. 


지역대학의 현실을 가장 단순하고 명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이제는 아주 흔하게 입에 오르내려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린 말 '벚꽃엔딩'이다. 지역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을 거라는 잔인한 의미를 담고 있다. 


벚꽃엔딩은 개념적인 단어가 아니라 현실이다. 3년 전 부산의 전문대 한 곳이 폐교했다. 지난해 부산지역의 모 전문대는 대기 번호 140번 대의 수험생이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앞 번호 합격자들이 대거 다른 학교로 빠져나갔다는 말이다. 올해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게 뻔하다. 인구 감소가 맞닥뜨린 현실은 지역대학엔 훨씬 엄혹하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2021년 385곳인 국내 대학 수가 2042∼2046년에는 190곳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를 기초로 계산한 수치다. 25년 뒤에는 대학 절반이 사라진다. 모든 지역의 대학이 균등하게 감소하지 않는 게 문제다. 서울은 81%가 생존하지만, 부산은 30%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부산의 대학 10곳 중 7곳은 25년 뒤 문을 닫는다는 말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산은 4년제 대학이 15곳, 전문대는 8곳이 있다. 구성원은 20만 명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 23개 대학 중 70%인 16곳이 사라진다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수업권은 물론이고 일자리를 잃은 교직원은 어쩔 것인가. 상권 소멸 등 지역사회에도 재앙이다. 


지역대학 감소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당연히 대책도 필요하다. 여태까지 입시제도 개선부터 대학 직접 지원까지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고 실행됐다. 하지만 인구 감소의 현실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지경이다. 


최근에 관심을 끈 대안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대학 개혁에 관심이 많은 경희대 김종영 교수가 같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지역대학의 존폐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국제아카데미 초청 강사로 부산에 와서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그는 '벚꽃엔딩'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 편중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좋은 대학이 서울에 몰려 있으니 사람이 몰리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다는 논리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SKY(서울대 고대 연대) 독점체제, '인서울' 기득권을 깨자고 했다. 전국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10곳 만들면 굳이 인서울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서울대에 지원하는 국가예산이 한 해 1조 원이라고 한다. 지역 대학을 새로 만들 이유는 없다. 지역의 거점국립대학에 그 이상의 강력한 지원을 해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면 된다. 김 교수는 "한국 대학들, 특히 지역대학은 거의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사례로 들었다. 캘리포니아에는 버클리를 비롯해 샌디에이고, UCLA 등 10개 대학이 몰려있다. 이들 대학을 중심으로 인재와 연구소 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실리콘밸리, 소렌토밸리 등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캘리포니아를 세계 산업을 주도하는 도시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명문대 '칼텍'(캘리포니아공과대학)은 원래 스루프공대로 캘리포니아 외곽의 지역대학에 불과했다. 이곳이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세계적인 학자와 학생을 유치해 명문 반열에 올라섰다.


명문대가 기업을 유치하는 사례는 흔하다. MIT가 있는 메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시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등 테크기업의 R&D센터가 몰려 있다. 


테슬라 공장이 있어 유명한 텍사스주의 오스틴에는 텍사스-오스틴대학이라는 명문대가 인재와 기업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델컴퓨터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도 오스틴에 있다. 


이렇게 지역마다 거점대학을 육성하면 지역에도 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다. 대학 이름도 프랑스 파리대학처럼 파리1대학, 2대학 식으로 하면 된다. 지역 대학에 서울대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다면 한국1대학, 2대학으로 붙이면 되겠다. 부산에 칼텍이나 MIT 같은 초일류 대학이 있다면 삼성과 LG 등 대기업들이 당연히 오지 않겠는가. 


지역대학의 위기를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열린 제1회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을 교육으로 선언하고 교육자유특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역대학의 육성과 교육부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윤 대통령은 교육의 중요성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어려움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는데 직원들이 그렇게 반대를 한다.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자녀들 경쟁력 있는 교육을 시킬 수 있겠냐는 거다. 부산이 이런데 다른 데는 어떻겠느냐." 윤 대통령은 "지방대를 육성하고, 지방에 좋은 중고등학교나 교육시설이 있으면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내려오고, 지역의 인재가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건 이 자리에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17개 시도지사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는 점이다. 부산시가 교육부와 교육자유특구 지정을 위해 물밑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부산이 교육특구로 지정돼 교육여건이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면 그 파급효과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구 감소 시대 지역대학의 감소 역시 불가피하다. 지역의 대학을 다 살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쟁력 있는 대학을 더 강하게 육성하는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단순한 논리가 절체절명의 명제가 되었다. 


초고령도시 부산이 지속가능하려면 젊은이들을 계속 부산에 붙들어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좋은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좋은 기업을 부산에 오게 하려면 이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보유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열정부의 부산교육특구 지원을 기대해본다.


안인석(국제신문 경영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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